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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지식재산권청, 인터넷 제공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자발적 해적 사이트 차단 계획 발표 / 설지혜,김형준

  • 작성일2023.11.21
  • 작성자이나라
  • 조회수1394


필리핀 지식재산권청, 인터넷 제공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자발적 해적 사이트 차단 계획 발표


설지혜 |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김형준 | 법무법인() 화우 미국 변호사


1. 들어가며

필리핀은 타갈로그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를 사용하는 나라인 만큼, 자막이 없이도 영미권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 때문인지, 필리핀 국민들이 영상 콘텐츠를 정식 플랫폼이 아니라 해적 사이트를 통해 이용하는 비율은 매우 높으며, 이것은 특히 팬데믹 기간 중 급증하였다. 아시아비디오산업협회(AVIA/Asia Video Industries Association)의 의뢰에 의해 시행된 YouGov라는 설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당시 필리핀 국민의 49%가 불법 스트리밍 혹은 파일공유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것은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에서 3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필리핀 국민의 53%가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로 하여금 해적 사이트를 차단하도록 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로 인해 디즈니, 넷플릭스, 파라마운트, 소니, 유니버설, 워너브라더스와 같은 유수의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사들이 회원으로 소속된 미국영화협회(MPA / Motion Picture Association)는 필리핀 지식재산청(IPOPHL)에 해적 사이트 차단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 필리핀 지식재산청(IPOPHL)2023. 9. 23. 저작권 침해 사이트의 자발적 차단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 규칙인 Memorandum Circular No. 2023-025(이하 “2023 차단규칙이라 함)를 공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하에서 그 상세한 내용과 법률적 의미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다.


2. 필리핀 지식재산청 발표의 구체적 내용

1) 법률적 근거와 연혁

필리핀 지식재산권법 Section 7.1 (c), (d), (e) 그리고 Office Order No. 13-170, S. 2013(“Rules and Regulations on the Exercise of Enforcement Functions and Visitorial Power of the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and Creating Thereby an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Enforcement Office”)에 따라 필리핀 지식재산권 집행국(IEO /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Enforcement Office)은 지식재산권 강화를 위한 집행 기능을 수행한다. Office Order No. 13-170IEO의 운영에 관한 세부규정으로서, 지식재산권 위반 행위에 대한 일반적인 신고 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나 적용 대상을 위조품 및 불법복제 상품(Counterfeit and pirated goods)으로 제한하여 해적 사이트에 대응하기 위한 권한의 근거로서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불법 콘텐츠를 유통하는 해적 사이트에 대한 IEO의 집행 권한을 강화하고 그 임무 수행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IPOPHL2020. 12. 17. Memorandum Circular No. 2020-049(이하 “2020 집행규칙이라 함)를 제정하였으나, 2020 집행규칙은 공표되지 않아 결국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연혁을 고려할 때 2023 차단규칙은 2020 집행규칙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해적 사이트에 대한 대응을 실효적으로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정 및 공표된 것으로 이해된다.


2) 2023 차단규칙의 세부사항 소개

- 권한 부여: IEO는 저작권자의 요청에 따라 관련 기관, 단체 또는 중간 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 불법 복제 콘텐츠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거나 해적 사이트(pirate website)의 차단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됨

- 차단 대상인 ‘pirate website’의 정의: 저작권 침해를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효과를 갖는 웹사이트 또는 저작권 소유자(owner) 및 보유자(holder) 등에 의하여 사용을 승인받은 사람의 동의 없이 제작, 생산 또는 복제된 내용을 포함하는 웹사이트(2020-049 규칙 I(5)(j))

- 차단 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자: 침해된 저작권 소유자 및 보유자가 필리핀 지식재산청에 해적 사이트에 대한 고발장(complaint)을 접수하여야 함(2023 차단규칙 1)

- 고발장 접수 후 진행 절차: IPOPHL의 평가담당관(Evaluation Officer)이 최대 10일간 일차적으로 평가한 내용을 상급자가 최대 5일간 심사하여 침해 여부를 결정하고, 침해로 판단될 경우 IPOPHL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에 대상 사이트의 차단을 요청함(2023 차단규칙 4)

■ 차단 요청을 받은 ISP는 도메인 네임(DNS), IP 주소, URL 등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이를 이행하게 됨(2023 차단규칙 5)

- 이의신청 절차

 IPOPHL의 차단 요청은 대상이 되는 해적 사이트의 관리자 내지는 소유자에게도 송달되어야 하며, 송달일로부터 5일 이내에 이의신청(protest)을 제출할 수 있고, 기간 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해당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됨(2023 차단규칙 5)

■ 차단 요청을 받은 ISP 또한 요청을 받은 때로부터 48시간 안에 근거를 들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2023 차단규칙 7)

 이의신청이 접수된 경우, 평가담당관이 최대 5일간 심사한 후 상급자가 5일 이내에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됨(2023 차단규칙 5)

 이의신청이 기각되는 경우, IPOPHL24시간 이내에 ISP 혹은 필리핀 통신위원회(NTC)에 대상 해적 사이트의 차단 요청을 하여야 함(2023 차단규칙 6)

- 차단 절차의 이행:

 ISPIPOPHL로부터 해적 사이트 차단 요청을 받은 때로부터 48시간 이내에 차단 조치를 이행하여야 하며, 5일 이내에 이행 여부에 대하여 서면 통지를 하여야 함(2023 차단규칙 7)

 ISPIPOPHL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차단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IPOPHLNTC에 해당 ISP를 신고할 수 있음(2023 차단규칙 8)

 차단 대상인 해적 사이트의 도메인 네임 또는 IP 주소 등이 변경된 경우, 고발자가 해당 사실을 IPOPHL에 통지할 수 있으며, IPOPHL은 해당 통지를 수령한 날로부터 5 영업일 이내에 수정된 차단 요청서를 발행할 수 있음(2023 차단규칙 9)

- 해적 사이트에 대한 차단 요청 결정은 최종적인 행정명령으로서, IPOPHL에 대한 불복은 가능하지 않으나, 관련 법률(Rule 22, Rule IV of the 2020-049 Rules)에 따라 취소소송은 제기할 수 있음(2023 차단규칙 10)

- IPOPHL의 차단 요청을 이행한 ISP에 대해서는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형사, 행정상의 책임이 면책됨(safe harbor 조항; 2023 차단규칙 11)

- 본 규칙은 주요 신문에 게재된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최소 2023. 11. 23. )부터 유효함(2023 차단규칙 16)

- 개정 전 규칙인 2020 집행규칙과의 차이점은, 개정 전에는 차단 절차에 NTC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도록 규정한 반면 개정 후에는 IPOPHLNTC를 거치지 않고 ISP에 직접 차단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음


3) ISP와의 양해각서(MOU) 체결

IPOPHL은 자체적으로 고시한 위 규칙과는 별도로 필리핀 내 주요 ISP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는데, 여기에는 PLDT, Globe Telecom, Smart Communications, Sky Cable, DITO Telecommunity 등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MOU의 원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략적으로는 ISP들의 자발적인 차단 요청 이행을 약속받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내용이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2023 차단 규칙의 내용을 반영한 법안이 아직 필리핀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더하여 IPOPHLNTC와도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위와 같은 주요 통신사업자 이외에 300여 개에 달하는 ISP에도 본 규칙이 실효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고 발표하였다.


3. 해외의 유사사례

위 내용을 종합하면 필리핀 당국이 상당히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불법 콘텐츠의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IPOPHL에 따르면 본 2023 차단 규칙은 2019년 시행된 인도네시아 정부의 차단 정책으로 인해 소비자의 50% 이상이 해적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중단하게 된 인근 국가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유사한 사이트 차단 절차를 처음 도입한 국가는 독일로, 해당 절차는 인터넷 저작권 클리어링 하우스(CUII)라는 독립기관을 중심으로 정부의 직접적인 관여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필리핀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한편, 본 규칙을 분석한 관련 매체에 의하면, 차단 요청부터 차단을 이행할 때까지 최대 26일이 소요되는데, 이는 차단 요청에 허용되는 시간이 30분인 이탈리아의 경우와 비교하면 너무 길다는 평가이다. 다만 이것은 관련 절차의 성격이 정부기관의 처분행위인지, 상대방에게 반론권을 보장하는 절차 기간 포함 여부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구성될 수 있어, 일률적인 평가는 성급하다고 할 것이다.


4. 한국에의 시사점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권을 침해당한 권리자가 ISP에 직접 침해 사실을 알리고 콘텐츠의 복제 및 전송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특정한 사이트의 차단까지 포함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저작권법 제103). 한편, 우리나라에서 저작권 침해 발생시 특정 계정의 해지 또는 이에 준하는 조치를 하기 위해서 원칙적으로는 법원의 명령이 필요하나, 정보통신망을 통한 불법복제물에 대해서는 이미 2009년경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시정명령 및 저작권보호원의 시정권고 등의 삼진아웃 제도가 마련되어 활용되고 있다(저작권법 제103조의2 및 제 133조의 2, 3 참조).

한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근거하여,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심의를 거쳐 ISP로 하여금 그 처리를 거부·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는바, 이는 사이트 차단의 효과를 갖는다. 다만 저작권 침해가 차단사유에 명시적으로 해당하지 않아 저작권 보호에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주무부처인 IPOPHL이 직접 차단권한을 갖도록 하는 필리핀 당국의 최근 발표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권리자 보호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호평을 받으며,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사들에 뒤지지 않는 콘텐츠 파워를 갖게 된 반면, 콘텐츠 불법 유통 사이트로 인한 피해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필리핀 당국의 적극적인 차단 정책 발표는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업자가 해적 사이트의 피해를 입게 된 경우 신속하게 유통된 플랫폼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점과 어떻게 이 방법을 이용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고, 적시에 사업자가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 및 지원해 주는 것이 한국저작권보호원과 같은 관련 기관이 부담하는 의무이기도 한 만큼, 이번 기고문을 통해 최근 발표된 필리핀의 해적 사이트 차단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내용 공유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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